문화피디 4기이자 작년 6월 불교방송에 입사해 6개월 간의 수습을 갓 끝낸 따끈따끈한 막내 PD 김경훈 선배를 만나봤습니다. 선배는 평소 분위기 메이커로 주변사람들에게 늘 유쾌한 에너지를 전달하기로 유명했는데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좋은 PD이자, PD에 대한 신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경훈 선배와의 인터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전: 불교방송에서 현재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주세요.
김: 스님 시중 들고 있고요. 염불하고 있고요. 봉양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이제 성불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전: 하하 선배 장난기는 여전하네요. 작년에 불교방송에서 PD를 딱 한 명 뽑았다면서요? 그런데 불교방송에 입사하신 거예요, 아님 부산 불교방송에 입사하신 거예요?
김: 불교방송은 하납니다. MBC나 SBS처럼 지역 민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KBS처럼 통합체로 운영되고 있죠.
전: 그렇군요. 선배 수습딱지 뗀지 얼마 안됐다고 들었는데 수습기간의 하루는 어땠나요?
김: (부산 불교방송은 현재 라디오만 하고 있고 곧 IPTV로도 진출 예정)라디오 PD는 영상에 비해 상당히 규칙적입니다. 스케쥴이 정해져있죠. 제가 담당하는 프로그램만 하면 되니까 수습 때도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는 것 말곤 큰 차인 없었어요. 신청곡 들어오면 주로 음반 찾는 일. 운행표라고 해서 프로그램 나갈 때 광고처리 라던지, 프로그램 끝나는 시간 조정하고 편성하는 거. 그리고 전반적으로 보조적인 역할 및 선배 밑에서 아나운서국, 편성국, 제작국 돌아다니면서 다 배우죠.
전: 수습기간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김: 추석이었는데 팀장님이 결혼을 하셔서 전 일이 엄청 많아졌죠. 늘 나가는 데일리 프로그램인 <활력충전>의 추석특집을 만들어야 했는데 좀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제가 길거리에 직접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죠. "활력충전 들어는 봤냐?" 물어보고 신청곡도 받을까 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의외로 듣는 사람이 꽤 있더라구요. 전 처음에 이 방송을 얼마나 들을까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좀 있었거든요. 육교에서 중학생 다섯 명을 만났어요. 다섯 명 중에 네 명이 불교래요. 그 중에 한 명은 자기 자신을 믿는대서 스스로를 믿는 게 그게 불교라고 말했죠. 아무튼 이리 와보라고 나랑 얘기 좀 하자고 “너희들 불교방송 아니? 활력충전 아니?” 그러니까 아 안대요. 거짓말마라. 내가 나왔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아니래요. 자기 엄마가 가게에서 항상 불교방송을 틀어놓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나: 불교신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저번 개편 때는 수습이셨고 이번에 봄 개편 다가오는데 생각해 놓은 프로그램 있으세요?
김: 면접 때 그런 질문 있었거든요. 입사해서 어떤 프로그램 만들고 싶냐고 그래서 제가 불교방송은 라디오와 IPTV 진출해있다고. 라디오 같은 경우는 <무릎팍 도사>처럼 <가슴팍 스님>이라고 해서 청취자 사연이나 고민들을 두 개 정도 받고 정말 진솔하게 답변해주는 걸로 그래서 스님에 대해 보다 친근감을 갖게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TV같은 경우엔 말을 끊었죠. 면접관들이 편하게 얘기하라고 그래서 전 “한마디로 TV의 경우 불교방송은 꼰댑니다 꼰대.”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심사위원들이 풉 하고 터졌죠. 왜냐고 묻길래. 불교라는 몇 천년간 내려온 좋은 컨텐츠가 있는데 불교방송 보면 항상 강의식이고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정말 보고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만약 영상을 만든다면 지식채널e 처럼 5분짜리 미니다큐같은 감성에 소구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고 얘기했죠.
전: 면접관분들이 좋아하셨겠어요.
김: 점수를 조금 땄을 수도 있는데 결정적인 건 아니었구요.
전: 결정적인 건 뭐였어요?
김: “자네가 실패한 경험이 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죠. “왜 세상이 만만하지 않습니까? 저는 세상 만만하게 좀 살아보려고 친구들이랑 프로덕션 만들었습니다. 만들었다가 6개월만에 쫄딱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심사위원들이 빵 터졌죠. 그 때 만들었던 프로덕션 이름이 청샅바였다고.
전: 청샅바? 왜 그렇게 지었어요? 씨름할 때 그 샅바 말하는 건가요?
김: 우리는 청샅바 세상은 홍샅바. 세상을 잡고 한판 승부 하겠다는 거죠. 귀에 쏙 박히잖아요 왜.
전: (별로 귀에 쏙 안 박히는데...)
김: 청샅바 프로덕션이 망하기 몇 일전쯤 바로 문화PD에 지원했죠. 그리고 문화PD를 열심히 했죠. 하하.
전: 언론사 시험 준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듣고 싶어요.
김: 학교 다닐 때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대학교 1학년때 택견했고 제대하고 나서부터 힙합동아리 들어갔어요. 휴학까지 치면 4년 정도 힙합동아리에 미쳐서 랩하고 돌아다녔죠. 메시지를 담아서 던지는 거라 방송이랑 비슷한 게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진짜 공연 많이 하고 돌아다녔어요. 언론사 준비에서만 보자면 사실 지식인이나 카페 같은데 들어가면 진짜 상세하게 나와 있으니 그거 보시면 되요. 상식 외우고 신문 읽고 책 읽고 기획안 쓰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TV 모니터링하고 그런 거죠. 그런 걸 1년 반 2년 정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졸업하기 전에 방송사 시험 쳤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래도 전 딴 데는 생각도 안했어요. PD밖에 생각 안 했거든요.
전: 꼭 PD여야만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김: 웃긴 얘긴데 PD가 안 될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상이야 말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시험에 다 떨어지고 나서 제대로 공부했는데 그 땐 마인드가 달라졌어요. 그 전에는 PD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때부턴 나는 PD다 생각하고 모든 걸 대했어요.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구요. 그 때 즈음 하나 깨달은 게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라는 사실이었어요. PD라고 하면 순발력, 창의력, 번뜩이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게 중요할 수도 있고 어쩌면 기본 일 수도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관심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전: 면접보고 또 낙방하면서 느낀 게 뭐였나요?
김: 처음 면접 볼 땐 꾸미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면접관들에게 잘 보이려구요. 그리고 면접까지 올라온 애들 보면 실력있는 애들 많거든요. 잘 나가는 애들도 많고. 솔직히 저도 남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 암튼 나서기 좋아하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잘난 사람들 속에 있어보니 또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오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난척을 많이 한 건 아닌데 ‘나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 거죠.
전: 자신감과 오만함의 차이가 뭔데요?
김: 오만한 건 자기만 아는 거고 자신감 있는 건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는 그 차이가 아닐까요?
전: 언론사 시험 준비하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김: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근데 처음 서울 올라가서 공부할 때 스터디를 했는데 애들 스펙이 남다르긴 하더라구요. 명문대 졸업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외교관인 사람도 있었어요. 첨엔 기가 좀 죽었었는데 막상 기획안 쓰고 작문해보면 특별히 다른 것도 없더라구요. 지방에서 먹히는 실력이면 서울에서도 도전해 볼 만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자라온 환경은 확실히 다르죠. 훨씬 좋은 문화생활 누리고 좋은 인맥 갖고 있고 그런 면에선 서울이 훨씬 유리하죠. 지방은 척박하지만 지방이라고 해서 실력이나 자질적으로 더 성숙 못하게 되고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선배가 보여 주셨잖아요. 불교방송 입사하면서.
김: 운이 좋았죠.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전: 입사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뭐라고 생각해요?
김: 그 요인을 한 가지로 딱 꼽을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분명한 건 문화PD가 지금의 나로 성장하게끔 엄청난 영향을 준 건 사실이죠. 문화PD와 청샅바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그리고 문화PD하면서 PD라는 게 더 하고 싶어졌어요. 자신감도 갖게 해줬고. 그렇게 보면 내려갈 타이밍에서 절 딱 잡고 올려준 거죠.
전: 선배가 생각하는 PD란 뭔가요?
김: 아직 잘 모르지만 개인적인 PD로서의 모토는 있습니다. 방송이란 게 던진다는 의미를 갖잖아요.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날아가는 슬로우볼 보단 한 두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가슴에 꽂히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어요.
전: 그런데 방송이란 건 시청률을 절대 무시 못하는 거잖아요. 시청률에 따라 이익이 돌아가는 그런 구조 아닌가요?
김: 그렇죠, 그게 아이러니기도 한데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시대나 사회를 통해 공감하는 것처럼 저에게 엄청나게 꽂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사람들도 거기에 공감할 확률이 커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시각을 구체적이면서도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하죠.
전: 문화PD가 혼자서 기획, 촬영, 편집이 가능한 어쩌면 진정한 1인 VJ이자 PD마인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선배가 문화PD 활동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 인가요?
김: 제가 방송국 들어와서 선배님들께 듣는 얘기가 과거에 네가 프로덕션하고 문화PD활동 한 것 때문인지 너무 혼자서 다 하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방송은 절대 그게 아니거든요. 철저한 협업이죠. 물론 문화PD로 활동하는데 있어서 잘 하는 사람이 혼자 다하면 편할 수는 있겠지만 방송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협업’이란 마인드를 키워주는 데는 조금 부족함이 있는 것 같아요. PD로서의 마인드나 자세 이런 건 키워줄 수 있지만요.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고 더 큰 걸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저희 조 원스 자랑을 좀 하자면 교육받을 때 저희 조가 4명이었는데 팀 이름이 ‘원스’였어요. ‘한번 더’ 이런 의미도 있고 사실 처음에는 ‘원펀치 쓰리강냉이’란 뜻이었죠. 저희 조가 좋았던 게 기획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저희가 만든 영상에 특별한 효과 그런 거 없습니다. 영상-자막-영상-자막 그렇게 가자 결정했죠. 자막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 지 정말 회의 많이 했어요. 다른 조들 촬영하고 편집할 때도 저흰 회의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막상 촬영, 편집은 진짜 빨리 끝났어요. 기획에서 충분히 회의하니까 사람들 간의 유대가 생겨서 좋고, 본격적인 작업 들어갈 때 맡은 바 임무가 정확하게 나눠졌죠. 물론 전담하는 분야가 있지만 되도록이면 촬영도 다 같이 갔어요. 저흰 영상이 간단한 구조라서 최대한 앵글을 미학적으로 찍으려고 노력했어요. 실제 촬영가기 전에 디지털 카메라 가져가서 미리 다 찍어보고 좋은 앵글 나오면 그대로 찍고 그랬어요. 팀원들에게 계속 일이 돌아가게 했고 한 사람도 소홀하지 않게 했죠.
전: 사전에 답사가서 앵글까지 연구하고 정말 기획의 중요성을 미리 알았나보네요.
김: 잘했죠. 진짜 잘했어요 저희 조.
전: 그럼 문화PD를 하면서 선배에게 특별히 도움 된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김: 보이지 않는 마인드 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도움 많이 줬어요. 열정을 키워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고 제가 만든 작품에 대한 애착도 갖게 해줬으니까요. 동시에 테크닉적인 면도 향상됐고 어느 정도의 돈을 주니까 배고픈 시절에 생활도 하게 해줬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저와 비슷한 관심사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단 거였습니다.
전: 문화PD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 무엇보다 문화PD가 갖는 매체 파워. 힘이 커졌음 좋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문화PD들이 만든 콘텐츠가 많이 소비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제작하는 사람들이 흥이 날거고 제작 하는 사람들이 흥이 나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게 될 거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 그만큼 영향력도 늘어나는 거니까 정부의 평가라던지 자체적으로도 보람이 있을거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뭐. 기본적으로 돈을 많이 써야겠죠 하하.
또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문화PD들 간에 협업이나 멤버십 이런 걸 증대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정책적으로 많이 내줬음 좋겠어요. 일 년에 한번 워크샵 하는 것도 적은 것 같아요. 만약 전국구로 워크샵 횟수를 늘리는 게 무리가 있다면 지역별로 돌려도 좋고 말이예요.
전: 갑자기 문화PD 5기 동기들이 보고싶어져요. 아무튼 PD라는 일차적인 목표를 이뤘는데 선배의 다음 목표가 있다면요?
김: 천하통일.
전: 하하. 일단 조국부터 통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 사실 진정한 의미의 PD가 뭔지 저도 아직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태울 수 있는 뭔가를 만드는 PD가 되어야죠.
전: 그럼 뭔가 ‘뜨거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김: 글쎄요. 아무튼 영상을 계속 하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배우고 싶고 어떤 자리에서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PD라는 일차적인 목표를 성취했다고 착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저도 아직 인생이란 과정에 있으니까요. 아무튼 더 뛰어나다기 보단 더 좋은 PD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전: 그럼 좋은 PD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PD’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글쎄, 좋은 PD란 뭘까요?
전: 그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
김: 막상 PD로서의 가치관이나 역할, 환상 같은 것들과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게 달라서 어떤 PD가 정말 좋은 PD인지 헷갈려요. 라디오 PD를 하다보면 청취자 분들 중에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되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전엔 몰랐던 7080 노래들도 많이 듣게 되거든요. 사실 십대나 이십대의 감수성은 제가 겪어봤으니 알겠어요. 그런데 예순 살, 일흔 살 어르신들의 감성은 전 어렴풋이 밖에 모르거든요. 하지만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PD는 자기가 지나왔던 길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지나오지 않은 길을 걸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배려하고 생각할 줄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PD가 정말 좋은 PD인 것 같아요.
전: 듣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애요. 마지막으로 문화PD 이하 PD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 제가 술자리에서도 이 말 했던 것 같은데 ‘자신을 의심하세요.’ 자신감을 버리란 건 아닌데 나 혼자만 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를 판단하는 건 물론 자신이겠죠. 성격, 능력등 많은 판단기준이 있지만 만약 내 주위 사람들로 나를 판단 할 수 있다고한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해요. 먼저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게 중요해요. 사실 본인이 아무리 하고 싶은 의지나 신념이 있어도 가다보면 반드시 벽에 부딪히고 힘들어질 때가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나를 잡아주는 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란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글/사진 전수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정보센터 문화PD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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